유실수 - 허망된 꿈의 결실
아무래도 헤어질거 같다
어차피 진짜 사귀는건 아니였으니깐 별 아쉬움은 없다
다만 예전과 지금 나에게 대하는
표현이 무뎌진 것이 사람관계로써는 꽝이라는걸 알려주는거 같다
에혀..
나때문에 많이 힘들었을텐데
그저 그것 하나만 미안할 다름이다
[ 왜 그러지요. 왜 당신은 소원을 빌지 않는 건가요. ]
[ 제가 소원을 빌면 . . ]
그대가 이 세상에 존재 할 수 있는 건가요.
------------------------------
유실수
[ 有實垂 ]
[ 失 ]
세상을 무너지게 만드는 과실의 나무
허망 된 꿈의 결실
------------------------------
나는 여행자
어디든 굴하지 않고 내 발길이 가는 곳으로 마음을 옮겨가는 그런 형식의 여행을 즐겼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는 편이 마음이 편하니깐
그리고 난 이 여행으로 인해 무엇을 찾고 있다. 무엇을 알 수 없기에 난 끝없이 여행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다.
한 고장에 들렸다. 오래된 나무집들과 아담한 벽에 넝쿨들이 자라 푸르게 뒤덮고 있었다.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깨끗한 골목 구석구석 까지 퍼져나가 마음을 왠지 안정시켜주는 그런 마을이었다.
나는 조용히 골목길을 따라 오래된 나무집들을 구경하였다. 오래되었지만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무척 아름다운 마을이다.
하지만 왠지 슬픈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옛 모습이 담긴 마을이라서 일까 구슬프게 우는 비둘기 울음소리가 더욱 더 슬프게 들리기도 했다.
순간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멈추었다. 나는 호기심이 시끄럽게 소리가 울려 퍼지던 골목으로 다가갔다. 그 곳에는 한 그루의 오래된 고목이 힘겹게 잎사귀를 들고 세월을 스스로 지탱하며 살고 있었다. 오래된 나무의 수피는 할아버지의 피부처럼 쭈글쭈글하였으나 생기를 머금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얘들아 이 나무는 뭐니?”
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이들은 숨죽인 체 나무를 한참 바라보더니 나의 질문에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천천히 발소리를 죽이며 다른 골목으로 향했다. 나는 아이들의 뒤를 따랐다.
“그 나무는 ‘유실수‘ 에요.”
나무가 보이지 않는 지점까지 오자 아이하나가 입을 열어 말해주었다. 한 아이가 말한 후 뒤이어 아이들이 너도나도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저 나무는 오래 되어 어른들이 신령한 존재라고 했어요. 언젠가는 과실을 맺을 나무라고 하며 우리 마을을 수 천 년 간 지켜주었대요.”
“유실수라는 게 정확하게 무슨 뜻이니?”
“유실수는 이 마을의 설화에 나오는 나무랍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아닌 부드러운 어른의 말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아이들은 목소리가 난 곳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더니 후다닥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아...”
“저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건가요.”
인사하게 미소 짓는 사람은 성직자의 예복을 정갈하게 입은 수녀님이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말투가 나를 이끌었다. 곧 나는 수녀님을 따라 들어간 성당 안에 있는 손님을 접대하는 원탁에 가 앉았다. 수녀님은 따뜻한 보랏빛 차를 타오셨다. 향기가 진하다.
“설화에 나오는 나무라니.. 정확하게 무슨 뜻인가요.”
나의 호기심은 수녀님이 맞은편에 앉자말자 빠르게 터져 나왔다. 수녀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여전히 지으며 입을 열었다.
“유실수라는 것은 이 고장에 남은 설화에 나오는 나무로써, 과실을 맺지 않는 나무에서 열리는 과실이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나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 과실을 칭하는 단어랍니다.”
“설화에 관해서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궁금하다. 유실수에 대해서
“유실수는 과실을 맺지 않는 나무에 소원을 빌고 빌어 드디어 과실이 열리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과실을 맺지 않는 나무에서 열린 과실, 유실수는 소원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과실과 나무가 산산조각이 난다더군요.”
수녀님의 표정은 설명하면서 약간 슬프게 변하였다.
“오래 전에 한 남자가 있었지요, 이 고장에서 태어난 그 남자는 역시 어릴 적부터 유실수의 설화를 들었으며 컸고 적당한 나이가 되자 부모에게 여행을 하러간다면서 마을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 남자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는 정신없이 나무를 심었지요. 여행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부모에게 조차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심은 나무는 과실이 열리지 않는 나무, 하지만 나무에 에르실이라는 이름까지 짓고는 지극 정성으로 돌보았지요. 세월이 흐르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가 심은 과실이 열리지 않는 나무에서 보라색 둥근 과실들이 열리기 시작한 겁니다.”
“과실이..”
“네, 과실을 맺지 않는 나무에서 보라색의 둥근 과실.. 하지만 그 남자는 괴로워하였지요.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서 나무를 부둥켜안고 몇 날 몇 일을 울었지요.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남자는 늙어갔고 드디어 만족하는 표정으로 눈을 감았지요. 그의 일기장에는 [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에르실에게 이제 만날 수 있겠지. 업에서 해방되어. ] 라는 구절이 그가 마지막으로 쓴 일기장 끝 부분에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나는 더 욱 궁금해졌다. 소원을 이룸과 동시에 과실과 나무가 산산조각난다고 했는데..
어째서 지금 이 곳에는 유실수가 존재하는 건지
“하지만 유실수는 남아있군요. 산산조각 난다고 하셨는데..”
“이건 저의 생각입니다만은..”
수녀님은 자신의 찻잔을 들어 약간 홀짝이며 차를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그는 소원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과실은 사라져도 유실수의 본원인 나무는 남아있는 거지요.”
“설화라고는 하지만 저는 왠지 굉장히 유실수의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느껴지는 군요.”
하얀 찻잔 안에 보랏빛 맑은 액체를 바라보았다. 나의 모습이 아롱하게 비추어진다.
“저 역시 설화라고 생각하지 않는 답니다.”
“어째서 지요?”
수녀님은 밝은 미소를 지으셨다.
“저는 그 천 년 전 남자의 일기장을 본 적 이 있답니다. 너무나도 생생하고 아련하여 가슴이 아플 정도로 일기의 내용은 고통스러운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에르실’이라는 존재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어째서 유실수의 힘으로 ‘에르실’과 만나지 못했는지 궁금하였지요.”
“저.. 그 일기장의 주인인 남자의 이름은 무엇이었지요.”
“그의 이름은 ‘붉은 약초의 약효’라고 하지요.”
“에?”
“현재 이름으로는 ‘에카틴’이라고 합니다.”
수녀님은 나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쿡쿡거리시며 웃음을 참으셨다. 나는 약간 얼빠진 것처럼 헤헤거렸고 곧 성당을 나와 수녀님의 배웅을 받았다.
선물이라며 작은 책 한권을 주셨다. 나는 인사를 하고 닫혀가는 성당 문을 뒤로 한 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 새 노을이 지고 까마귀 3마리가 힘을 잃고 지상으로 내려가는 태양을 향해 날쌔게 날아가고 있었다.
이제는 작은 점으로 보인다. 눈이 부시다.
유실수, 과실이 맺지 않는 나무에서 열린 과실
실질적으로는 열린 과실을 지칭하는 단어, 하지만 나무도 포함이 된다.
그리고 ‘유실수’설화와 함께 내려오는 천 년 전의 이야기인 ‘에카틴과 에르실’
에카틴은 원했다. 에르실을
에르실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에카틴에게서는 자신의 인생을 바칠 만큼 소중한 것 이었나보다.
유실수는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약속을 과실을 맺는 것으로 소원을 이루어준다.
에카틴은 분명 에르실을 원한다고 유실수를 키웠을 테고 그 유실수는 과실을 맺었으나
에카틴은 에르실을 만나지 못하였다. 그리고 소원을 이룸과 동시에 사라진다는 유실수는 오직 과실만 사라진 체 현재 내 눈앞에서 이 장소에서 수 천 년간의 시간을 보냈다.
“무엇이든지 이유가 있겠지. 지금 내가 여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다만 알 수가 없을 뿐이다. 그뿐이다.
나는 어둑해지자 마을의 여관을 찾았다. 마을의 분위기를 닮아서일까
조용하고 고요하다. 갈색빛깔의 벽면이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여관의 여주인은 말없이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방의 문을 열자 접혀있는 이불이 놓인 침대가 보였고 작은 사진들이 방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저 사진들은 뭐인가요?”
조용하던 내가 갑자기 말을 걸자 여주인은 잠시 깜짝 놀란 듯 했다. 그러나 곧 표정을 수습하더니 그녀는 나에게 말해주었다.
“이 마을에 머무르다가 떠나신 분들이 남긴 사진이랍니다. 이 마을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가지 않지요. 그걸 안 한 여행자분이 다른 곳의 사진을 한 장 저에게 주셨고 저는 그 사진을 여관에 걸어놓았답니다. 그 후 여관에 오시는 다른 지역의 손님들은 사진의 이야기를 들으신 분들은 꼭 저에게 다른 지역이나 풍경, 축제 사진을 주시고 가셨지요. 그 사진들이 많아져서 이제는 방 하나하나에 장식할 정도로 많아졌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도 뭔가를 주고 싶어졌다. 나는 방 문 근처에 있는 작은 탁자에 가 짐을 내려놓고 이내 뒤적거렸다.
“사진은 아니지만 받아주세요.”
작은 고깔모자를 쓴 인형을 나는 여관 여주인의 손에 안겨주었다.
그 인형은 실로 움직일 수 있는 마리오네타 인형이었다.
좀 특이한 점이라면 두 눈 아래에 붉은 눈물모양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건..”
“부담가지지 마세요, 특별히 소중히 여겼던 것도 아니고 저도 산에서 만난 어느 분이 인형을 주셨지요.”
여주인은 그 작은 인형을 소중히 손으로 감싸 안았다.
"이 인형을 주시면서 특별히 하시던 말은 없던가요.“
그녀의 말에 갑자기 불현듯 떠올랐다. 그 산에서 만난 노인분의 말이
“저에게 인형을 주시면서 이야기를 해주셨죠. 그 인형은 옛날 유명한 서커스에서 사용된 유희인형이라고 그러던 중 인형에게 감정을 심어준 소녀가 나타났다고 했지요. 소녀와 인형을 도망을 쳤고 서커스단장은 소녀의 머리를 부수었다고 했던가... 그래서 소녀의 머리에서 튄 핏방울이 인형의 두 눈 밑에 찍혀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죽어버린 소녀의 환생체를 찾아 헤매고 있는 가여운 인형이라더군요.”
여기까지 말하자 살짝 걱정되었다.
저주받은 인형이라고 여주인이 소리치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이 끔찍한 이야기를 듣고도 여주인은 담담했다.
“이 여관을 들리신 손님 중 이 인형과 비슷한 사람을 보았지요. 눈 아래에 붉은 눈물방울 .. 그 사람이 인형을 찾고 있다더군요. 혹시 그 사람과 연관 있는 인형일지도 모르겠군요.”
사람은 서로를 만남으로 인해 고리를 만들고 그 고리는 결국 끼워 맞추어진다.
난 여관 여주인의 말을 듣고 한참 멍해졌다. 이야기는 이어지고 결국 끝을 맺는다. 산에서 만난 노인의 말소리가 들려오는 거 같았다.
“그럼 부디 편안하게 쉬세요.”
“네...”
밤은 점점 깊어졌다.
나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뒤척거렸다. 창문을 통해 밝은 달빛이 나무마루에 스며들었다. 환상적 모습이다..
나는 잠이 오지 않자 창문 쪽으로 향했다. 달을 바라보다가 창문 너머의 마을을 바라보았다. 나는 크게 놀랐다.
‘감사합니다..’
“...?!”
‘이제 그 여자아이를 찾을 수 있어요. 저에게 감정을 심어준 여자아이를’
가볍게 실로 묶인 체 손에 꼭 맞는 나무 조각에 매달려있는 붉은 눈물방울의 마리오네타 인형은 나를 향해 인사를 했다. 그 인형을 움직이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붉은 눈물방울이 눈 아래에 찍혀있는 그 사람은 온몸을 빛바랜 브라운색의 망토로 가린 체 인형을 움직이며 나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제 이름은 유의 자리 주인인 크라운, 왜 당신이 이 세계에서 헤매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관여할 일은 아닌 같군요. 저 역시 이 세상을 배회하고 있으니까요. 부디 모든 걸 잃어버리기 전에 본래의 당신의 세계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달빛이 만들어준 환상
크라운은 사라졌지만 나의 눈에는 다른 것이 보여 왔다.
유실수, 에카틴과 에르실을 매개로 더 욱 짙어진 의미의 나무
순간 날카로운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잠든 마을의 하늘로 울려 퍼졌다.
지금 이건 환상인 걸까, 현실인 걸까
‘유실수...’
난 유실수에게 손을 뻗었다. 난 여행을 하고 있다. 무엇을 위하여 여행을 하고 있는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