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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 밤중에 이삿짐 나르기

한 밤중에 이삿짐 나르기


 

금년엔, KBS 설날 특집 다큐멘터리인 "어떤 귀향"을 제작해서 방영(2004년 1월 23일 저녁 7시 30분)한 바 있었습니다. 스리랑카 노동자인 야무나 여인의 가족에 얽힌 사연과 인도네시아 혼혈아인 띠안의 가족에 얽힌 이야길 다큐멘터리로 만든 내용이었지요. 촬영은 안산과 스리랑카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 이뤄졌는데, 주무대는 안산의 원곡동이었습니다.

 

안산의 원곡동은 2001년 3월에 방영된 다큐멘터리 "국경없는 마을"을 제작하면서 이후 약 2년 동안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게 살았던 동네입니다. 아래의 글은 안산에서 대구로 이사한 뒤, 다시 안산을 찾으면서 "어떤 귀향"을 촬영할 당시 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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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힘 좀 쓰셔야겠는데, 괜찮겠어요?"
"무슨 힘, 그것도 밤이라니?"

재호 아저씨가 낮에 불쑥 던진 말이다. 아저씨라고 하지만, 사실 그는 나하고는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그를 '재호아저씨'라고 부르게 되면서 얼떨결에 나 또한 그를 '재호아저씨'라고 부르게 됐다. 그는 '쉼터의 지킴이'다. 쉼터란 안산외국인노동자에서 운영하는, 갈 곳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보금자리를 일컫는다. 재호아저씨는 전라북도 순창 출신으로 올해 42살이다. 안산 지역에서 건설직 노동자로 날품을 팔며 살아가던 중, 이른바 'IMF 구제 금융' 상황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일거리를 잃고 거리의 부랑자로 지내다가 원곡동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리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의 쉼터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머물다가 한국인으로서 쉼터의 지킴이가 된, 키 작고 마음 씀씀이가 그저 솔찬한 아저씨다. 재호 아저씨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0년 12월 부터 그 다음 해 2월까지 촬영된 다큐멘터리 "국경없는 마을"을 제작할 때 부터이다.

"무슨 PD가 이런 데 까지 촬영와서 고생을 하는지 이상하네요?"
"아니 뭐가 어때서요."
"그렇잖아요. 뭔 PD가 부랑자들이나 그것도 갈 곳없는 외국인들이나 들락거리는 냄새나는 쉼터에서 자느냐 말이지요."

어느덧 3년이 다 된 일이 됐다. 당시 이승준 감독과 나는 원곡동으로 짐을 싸들고 갔고 그곳에 방 하나를 얻었다. 이승준 감독은 주로 그 곳에 머물르며 촬영을 했고 나는 주로 쉼터에 머물며 외국인노동자들과 함께 어울렸다. 그런 모습이 재호아저씨로선 이상했는가 보다. 그러다보니 그와 나 사이엔 묘한 썰렁함으로 교감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것은 PD라는 직업과 거리 부랑자 신세일 수 밖에 없었던 그 사이에 떨어진 거리감 때문일 것이다. 아마 그로선 '그러다 며칠 안가서 그냥 쑥 가버리고 말겠지'하고 생각했던 듯 싶다. 그러던 중 어떤 일이 벌어지면서 그와 나는 아주 절친한 사이로 변모하고 만다.  2000년의 설날 연휴가 시작된 첫날 밤이다. 인도네시아 식당 '누산따라'에서 놀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지께의 전화였다. 지께는 나중에 나와 함께 안산 시실리에서 동거를 하게된 인도청년이었다.

"센터메 잘디 아이예" - 센터로 빨리 오세요
"꺄후아?" - 무슨일인데?
"코리안갸까, 아비 빠글호기야" - 재호아저씨가 지금 미쳤어요
"꺄 바떼호?" - 뭐라고?
"소주 보훗 피야타. 잘디 아이예. 함록 이다르락따헤" - 소주를 많이 마셨어요. 빨리 오세요. 우린 무서워요"
 
안산 외국인 노동자 센터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평소 순박한 웃음을 잃지 않았던데다가 오갈데없는 외국인노동자들의 벗이었던 재호 아저씨가 무섭다고 할 정도란 말에 뭔 일이 벌어졌다 싶었다. 센터는 난장판이었다. 소주병이 널부러져있고 토사물이 곳곳에서 악취를 풍겼다. 쉼터에 있던 외국인들은 소주를 병 채 마시고 있는 그를 말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 때 시간은 밤 11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선 재호아저씨에게 달려들어 소주병을 강제로 빼앗았다. 그런 다음 토사물에 젖은 그를 걸레로 대충 닦은 다음 침대에 눕히고 소주병과 토사물을 치웠다.

"당신이 뭔데 내 소주를 빼앗아. 내 소주 내놔!"

어느덧 그는 방에서 걸어나와 청소하던 내 앞에 섰다. 술을 뺏고 다시 방에 넣고 하기를 두시간 가까이 했다. 술을 사러 거리로 나가면 다시 센터로 데려오고... 그러는 동안 외국인들은 잠자리에도 들지 못하고 우리 두사람의 한밤중 씨름을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정도가 지나쳐 이젠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생각에 최후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그것은 폭력이었다. 몇몇 관절을 꺽고 명치와 척추 부분에 강한 지압을 했다. 재호 아저씨는 힘없이 쓰러졌고 나는 그를 집어올려서 골방에다 던졌다. 그런 다음 문을 걸어버렸다.  당시로선 그것이 최선이었다.

다음날 아침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땐, 토사물로 방안은 난장판이었다. 설 연휴였기에 외국인 노동자센터의 상근자들은 아무도 없는 상황이었다. 술을 찾는 재호아저씨와 꼬박 이틀을 그렇게 씨름을 하며 설연휴를 보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는 알콜중독이었다. 그러기에 술을 끊고 살아가던 그였지만, 설날 고향에 있어도 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가 그만 술을 마신 것이고 한동안 잠자고 있던 중독 증세가 다시 살아났던 것이다.

재호 아저씨는 사연 많은 사람이다. 건설현장의 일용 노동자들이 안고 있는 사연들을 들어보면 다 기구하겠지만, 그의 감춰진 이야기는 소설처럼 눈물을 쏟을 정도다. 그 일 이후 나는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로 부터 많은 이야길 들을 수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늘어놓기엔 그의 사생활 침해도 될 수 있기에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3년 가까이 그를 지켜보면서 내가 알고 있는 재호 아저씨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진정한 벗이다. 물론 가끔 술 사고와 같은 문제를 야기하지만서도 말이다. 배운 것 없는 무지렁이. 그러면서도 외국인을 이웃으로 받아들이며 함께 기뻐하고 울줄 아는 사람. 사실 그에겐 외국인노동자 인권이니 고용허가제니 하는 말은 중요하지 않다. 그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로 "외국인노동자도 사람이잖여"할 뿐이다.

안산에서 대구로 이사할 때, 함께 대구까지 와서 이삿짐을 옮겨주던 이웃. 그러면서도 내가 슬그머니 건네주던 10만원을 쑥스러운듯 "아는 처지에 무슨 돈은.." 하며 바지호주머니에 넣던 사람. 그러면서 "고마워요. 히히.. 요즘 돈 한푼 없었는데..."  요즘 그는 형편이 좀 나아졌다. 영세민으로 정부에서 받아오던 23만원 대신, 이젠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의 정식직원이 되어서 한달에 60만원의 월급을 받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말이 정식 직원이지, 그의 월급은 정부에서 나오는 것이다. "히히.. 이젠요. 의료보험도 되고 국민연금도 되고요. 퇴직금도 받을 수 있다네요. 쑥쓰럽네요."  그는 아무런 보장도 없이 무보수로 5년 가까이 안산외국인 노동자 센터의 지킴이로 일해왔었다. 이를테면 티 나지 않는 자원봉사자였던 것이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밖에 나가면 돈 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데..."
"좋잖아요. 여기 있으면 좋은 외국인 만나서 친구 되고요. 가끔 이상한 외국인도 있지만 여기가 이젠 우리집 같아요. 그리고 최소한 밥은 먹여주잖아요. 그리고 이 PD같은 사람이 담배도 사주고... 히히히"

그와 친해지기 시작했을때 내가 그에게 던진 말이다. 뭔가 의미가 있을것으로 생각해 물어본 말이었지만, 그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어찌보면 그는 안산의 원곡동에서 진정한 국제인인지도 모른다.

"오늘 밤, 힘 좀 씁시다."

그가 힘쓰자고 한 것은 정말 힘없는 母子의 이삿짐을 나르자는 것이었다. 방글라데시 노동자와 결혼했지만 남편이 강제출국 당한 뒤 소식이 없는 상태에서 9살 짜리 아들과 살아가는 아줌마. 그녀는 정신박약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세상 물정에 정말 어두운 그래서 가난한 여인이다. 사연인즉 이사를 해야 하는데, 이사짐을 옮길 차를 부를 형편이 안되어 고민하고 있었다. 그것을 재호 아저씨가 듣고는 여기저기 수수문해 트럭을 알아본 것이다. 문제는 트럭 주인의 영업시간이 끝나야 이사짐을 옮길 수 있다. 그 시간이 밤 10시 30분.  재호 아저씨와 나 그리고 한밤중에 자원봉사자로 나선 트럭주인은 모자의 이삿짐을 옮겼다. 조촐한 모자의 짐이었지만, 갖출 것은 갖추고 사는지라 만만치 않았다. 아줌마는 이제 재혼을 할 요량이라는데, 배우자 될 사람이 야근을 하기에 그들 모자의 힘겨울 수 밖에 없는 이삿짐을 재호 아저씨가 무료로 이삿짐트럭을 자원 해줄 사람을 찾고 한밤중 함께 이삿짐 옮길 사람을 나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아줌마 열심히 사세요. 세상 무서워요. 눈 크게 뜨시고요. 얼마 안돼요. 아드님한테 맛있는 것 사주세요"

트럭 주인이 아줌마에거 만원을 건네주면서 한 말이다. 트럭 주인 역시 내가 아는 한 그리 여유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자원봉사란 말의 의미도 잘 모르는 사람이 한밤중에 트럭을 몰고선 이삿짐을  옮겨주고 돈 만원을 아줌마 손에 조심스럽게 넘겨주는 것이다. 그리곤 야근해야 한다면서 트럭을 몰고 원곡동 거리를 떠났다.

"사람 좋지요. 저 양반이 센터에 기부금을 10만원이나 낸  사람이에요. 그리고요. 외국인들 가운데 정말 돈없고 어려운 사람 있으면, 이삿짐 옮기기 위해 한밤중에 잘 나서주기도 하고 말이지요."

안산 원곡동에 있다보면 참으로 착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곤 한다. 그들을 일일이 다 소개하고 싶지만 나의 짧은 문장력은 표현의 한계가 있는지라 그냥 여기서 멈추고 만다. 물론 다른 곳에도 착한 사람들은 많다. 안산의 원곡동이라고 더 많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곳에선 정말 이웃과도 같은 사람들이 유난히도 많다. 도시면서도 시골의 읍내 같은 분위기가 있는 곳. 또한 작은 아시아가 있는 곳. 여기라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심심하면 벌어지는 폭력사건들. 암암리에 벌어지는 매매춘. 그리고 한밤중 고성방가. 솔직히 말하면 원곡동에서 인도에서 만나던 원형적인 삶을 느낀다. 마치 원곡동은 인도의 어느 도시 풍경 같다.

오늘 밤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쉼터에서 잠자리에 눕지만,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으로 잠자리를 설친다. 

2003년 10월 16일 새벽 3시 즈음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PS : 이후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그날 이사를 했던 아주머니는 한국인 노동자와 재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재호아저씨는 또 다시 술을 마셔 큰 사고를 쳤단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사회복지 근무자 자격은 상실했지만, 아직도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의 지킴이로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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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1 10:17 2010/04/0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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